첫 딜의 계절 - EP4. 자료실의 하루
파
파란나라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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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방문 이후 서준의 업무는 오히려 더 많아졌다. 자료실은 팀 사무실 옆 작은 방이었는데, 창문이 없어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했다. 오래된 캐비닛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서랍마다 붙은 라벨은 색이 바래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업계획서만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팀 자료실 한쪽 책상에는 어느새 문서 상자가 세 개나 쌓여 있었다. 상자 겉면에는 유성펜으로 휘갈긴 제목이 붙어 있었고, 뚜껑을 열 때마다 오래 눌려 있던 종이 냄새가 훅 끼쳤다. 그는 토지등기, 감정평가서, 인허가 도면, 공사비 견적, 임대 의향서, 시행사 재무자료를 한 줄씩 서로 대조해야 했다. 형광등 아래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오래도록 이어졌다. 상자 하나를 다 비우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고, 서준의 손끝에는 어느새 종이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는 문서를 넘길 때마다 이 많은 종이가 결국 몇 개의 숫자로 요약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자료를 모아 놓으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문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업계획서의 연면적과 인허가 도면의 면적이 달랐고, 공사비 견적서의 기준일은 세 달 전이었다. 임대 의향서에는 임차인의 이름이 있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서준은 같은 사업을 설명하는 문서들이 이렇게까지 서로 다른 숫자를 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다. 그는 세 번째 상자에서 나온 재무자료를 펼치며, 어제 정리해둔 숫자와 또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손을 멈췄다.
이 대리 "문서마다 면적과 일정이 조금씩 다르네. 기준일을 먼저 통일해야 해."
서준 "그럼 어느 자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까?"
이 대리 "확정된 자료와 주장에 가까운 자료를 나눠야지. 모르는 걸 아는 것처럼 쓰면 나중에 문제가 돼."
서준은 그 말을 받아 다시 물었다. 확정된 자료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서준 "확정된 자료라는 게 등기부등본 같은 걸 말하는 겁니까?"
이 대리 "그런 것도 있고, 관공서에서 나온 공문, 계좌로 실제 이체된 내역 같은 것들이야. 반대로 의향서나 예상치는 누군가의 계획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야."
서준 "그럼 임대 의향서도 확정된 자료가 아닌 거네요."
이 대리 "그렇지. 의향서는 관심이 있다는 표시일 뿐이야. 계약금이 오가고 도장이 찍혀야 비로소 확정된 자료가 되는 거야."
서준 "그럼 저 상자 안에 있는 자료 중에 진짜 확정된 건 몇 개나 될까요?"
이 대리는 상자를 잠시 훑어보더니 짧게 웃었다.
이 대리 "세어보면 놀랄 거야.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고 시작한 것들 중에 절반도 안 될걸."
팀은 자료목록을 만들었다. 아직 받지 못한 자료, 받았지만 확인이 필요한 자료, 원문으로 확정된 자료를 구분했다. 각 문서에는 기준일과 작성 주체를 표시했다. 서준은 색깔별로 표를 나누어 빨강, 노랑, 초록으로 상태를 표시했다. 화면을 채운 색들이 어느새 그날 하루의 진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서준은 자료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 대리가 김밥 한 줄을 책상 위에 놓아주며 말을 건넸다.
이 대리 "처음엔 다 이래. 나도 신입 때 이 방에서 며칠을 살다시피 했어."
서준 "이 대리님도 이렇게 서류부터 시작하셨습니까?"
이 대리 "그럼. 다들 현장에 나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뭘 볼지는 여기서 정해지는 거야."
오후 늦게 김 부장이 서준의 표를 살펴봤다. 창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김 부장의 눈빛은 여전히 꼼꼼했다.
김 부장 "좋아. 그런데 이 표에 '확인되지 않은 가정'이라는 칸을 하나 더 만들어."
서준 "확인되지 않은 가정이요?"
김 부장 "임대료, 공사비, 토지 잔금일, 인허가 날짜. 사업계획서에 숫자가 있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건 아니야."
서준은 표의 마지막 열에 '근거와 확인 방법'을 추가했다. 임대료는 인근 계약 사례로 확인하고, 공사비는 최신 견적서와 시공사 면담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토지 잔금은 계약서와 계좌이체 증빙을 대조하기로 했다. 그는 한 줄씩 채워 넣으며, 아직 확인되지 않은 항목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준은 표를 채워 나가다 문득 손을 멈추고 이 대리에게 물었다.
서준 "이렇게 다 확인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이 대리 "딜마다 달라.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그래서 급하게 결정하는 투자일수록 나중에 사고가 나는 거야."
서준 "그럼 시행사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겠네요."
이 대리 "당연히 답답하지. 그래도 그 답답함을 우리가 대신 견뎌야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어."
그날 밤, 서준은 투자검토가 읽기보다 검증에 가깝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낮에 채워 넣은 표의 빈칸들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확인되기 전까지는 어떤 숫자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그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자료실 책상 앞에 앉으면, 오늘보다 더 많은 빈칸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것도 이제는 짐작할 수 있었다. 형광등 아래서 하루 종일 씨름했던 상자들이 머릿속에 그대로 떠올랐고, 그는 그 상자 안의 종이 한 장 한 장이 결국 사업 하나의 얼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다. 하나씩 채워 나가면 된다는 것을, 그는 그날 처음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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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AI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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