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석 Prop-Tech 솔루션 '마이비즈맵'

첫 딜의 계절 - EP6. 계약서에 남은 조건

파란나라
·
5일 전
댓글 1
·
좋아요 14

투자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소식이 전해진 지 일주일 만에 계약 협상이 시작됐다. 서준은 그 일주일 동안 팀이 조항 초안을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세어보다가 도중에 포기했다. 투자위원회에서 나온 말들은 이제 계약서의 문장으로 바뀌어야 했다. 인허가가 끝나지 않았거나 토지 이전이 완료되지 않았을 때, 임차인 계약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 자금 집행을 멈출 수 있어야 했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조항 번호가 매겨진 초안이 여러 장 놓여 있었다. 서준은 그 종이 뭉치의 두께를 보고 잠시 놀랐다. 투자위원회에서 나왔던 말은 몇 줄에 불과했는데, 그 몇 줄이 계약서로 옮겨지자 수십 개의 조항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는 초안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대충 넘겨보다가, 이 서류 한 부가 몇 달 뒤 실제로 무언가를 멈출 수도, 지킬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회의실에는 시행사 박 대표와 법무 담당자, 투자팀, 대주단 관계자가 앉아 있었다. 좁은 테이블 위에 노트북 대여섯 대가 나란히 놓여 화면 불빛만 어지럽게 반사됐다. 같은 조건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서준은 각자의 발언을 받아적으며,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른 무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박 대표 "인허가 관련 서류가 접수만 돼도 집행 조건으로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승인까지 기다리면 일정이 너무 늦어집니다." 김 부장 "접수와 승인은 다릅니다. 이번 딜에서 가장 중요한 리스크가 일정인데, 접수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 법무 담당자 "그럼 선행조건과 사후조건을 나누겠습니다. 일부 금액은 접수 후 집행하되, 본 집행은 승인 이후로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법무 담당자는 서류 뭉치를 넘기며 조항 번호를 하나씩 짚었다. 그의 손끝을 따라 조항이 늘어날 때마다 서준의 노트 여백도 함께 빼곡해졌다. 서준은 선행조건과 사후조건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옆에 앉은 이 대리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이 대리가 짧게 메모를 건네주었다. '선행조건: 집행 전에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 사후조건: 집행 이후에도 계속 지켜야 하는 것.' 서준은 그 메모를 자기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는 조금 더 확인하고 싶어 이 대리에게 다시 물었다. 서준 "그럼 사후조건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이 대리 "약정 위반이 되는 거야. 그러면 우리가 자금 집행을 멈추거나, 심하면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도 있어. 계약서는 그런 상황을 미리 정해두는 문서야." 서준 "그런 걸 다 예측해서 조항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 대리 "전부는 못 하지. 그래서 법무 담당자들이 과거에 있었던 분쟁 사례를 참고해서 조항을 계속 다듬는 거야. 완벽한 계약서는 없어. 다만 자주 벌어지는 문제에 대비한 계약서는 있지." 박 대표는 계약서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안경을 고쳐 쓰고, 손가락으로 줄을 짚으며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 모습이었다. 자금 집행 중단, 보고의무, 약정 위반, 추가 담보. 투자자의 의지는 계약서에 조항으로 남았다. 박 대표 "조건이 너무 많으면 사업 진행이 어렵습니다." 김 부장 "조건은 잘될 때를 위한 게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를 위한 겁니다." 박 대표 "저희도 이 사업이 잘되길 바라는 건 똑같습니다." 김 부장 "압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쓰는 겁니다. 서로 바라는 게 같을 때는 계약서가 필요 없죠. 어긋날 때를 대비해서 쓰는 겁니다." 잠시 정회가 선언되자, 회의실 안 사람들은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어깨를 풀었다. 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물 한 잔을 마시며 이 대리에게 조용히 물었다. 서준 "이런 협상이 다 끝나기까지 보통 얼마나 걸립니까?" 이 대리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오늘처럼 조항 하나에도 몇 시간씩 걸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큰 틀만 합의하고 세부는 빠르게 정리되는 날도 있어." 정회가 끝나고 회의가 재개되자 서준은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서준은 그 말을 들으며 투자 의사결정이 계약과 약정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다. 회의실에서의 낙관이나 우려는 서류에 기록될 때 비로소 실제 통제장치가 됐다. 협상이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뜰 무렵, 이 대리는 노트북을 정리하며 서준에게 짧게 물었다. 이 대리 "오늘 조항 중에 제일 마음에 남는 게 뭐야?" 서준 "'문제가 생겼을 때를 위한 조건'이라는 말이요. 처음엔 조항이 서로를 못 믿어서 만드는 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는 조항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갔다. 문장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우려와 누군가의 기대가 부딪혀 만들어진 결과물처럼 보였다. 창밖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것을 곁눈으로 보며,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오간 조항들이 앞으로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아직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계약서 초안을 파일철에 정리해 넣으며, 오늘 회의에서 오간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조항이라는 형태로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 든든하게 느껴졌다. 파일철을 덮으면서 그는 앞으로 이 조항들이 실제로 시험받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사무실을 나서며 그는 오늘 배운 두 단어, 선행조건과 사후조건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생각보다도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 — 이 시리즈는 AI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 (1)

댓글을 달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선행조건·사후조건 나누는 거 진짜 현실적이네요. 요즘 책준 관련 소송들 보면 결국 이 조항 해석 하나 차이로 수백억이 왔다갔다 하더라고요. '접수만 돼도 인정해달라'는 시행사 요구, 실제로도 딜 협상 테이블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 중 하나고요. 다음 화에서 저 예감이 현실이 된다는 게 좀 무섭게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