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딜의 계절 - EP3. 서류 밖의 땅
파
파란나라
하루 전
댓글
0
·
좋아요
18
며칠 뒤 팀은 현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서준은 사업계획서에 첨부된 지적도를 다시 펼쳐 보았다. 사업부지는 서울 외곽의 산업단지 인근에 있었다. 지도에서 보았을 때는 넓고 반듯했지만, 실제 현장은 달랐다. 차가 진입로에 들어서자 흙먼지가 살짝 일었고, 진입도로 옆에는 오래된 창고가 있었다. 창고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진 채 얼룩덜룩했고, 지붕 한쪽은 녹슨 함석이 들려 있었다. 대형 차량이 지나가기에는 도로 폭이 좁아 보였고, 마주 오는 트럭 두 대가 겨우 비켜 지나갈 만한 너비였다. 차에서 내리자 흙과 기름이 뒤섞인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멀리서 화물차 엔진 소리가 낮게 울렸다. 서준은 지도 위 반듯한 사각형과 눈앞의 울퉁불퉁한 경계선이 같은 땅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든 지적도와 눈앞의 풍경을 몇 번이나 천천히 번갈아 보았다.
서준 “사업계획서에는 토지 확보가 완료됐다고 되어 있는데요.”
박 대표 “잔금과 일부 정리만 남았습니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박 대표는 창고를 가리키며 웃었다. 철거만 하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손짓은 자신 있어 보였지만, 서준은 그 창고 앞에 쌓인 낡은 파레트와 방치된 컨테이너를 보며 철거가 그렇게 간단할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 동행한 지역 중개인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창고 부지의 소유권 이전이 끝나지 않았고, 도로 확장에도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역 중개인 “저 창고 쪽은 아직 계약이 완전히 끝난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로를 넓히려면 옆 토지 일부도 협의해야 할 겁니다.”
서준은 박 대표를 바라봤다. 박 대표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준은 그 표정에서 뭔가 서둘러 넘기려는 기색을 읽었다.
박 대표 “최종 정리 중인 사항입니다. 사업 전체를 흔들 정도는 아닙니다.”
김 부장은 도로 끝까지 걸어가 주변을 살폈다. 그는 말없이 도로 폭을 눈으로 재보고, 차량이 회전할 수 있는 반경을 가늠했다. 인근 공장의 셔터 앞에 서서 출입 차량의 흐름을 잠시 지켜보기도 했다. 진입로의 높이 차이, 배수로의 방향, 인근 주택가와의 거리까지 차례로 확인했다. 서준은 그 뒤를 따라다니며 김 부장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짐작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서준 “부장님은 지금 뭘 확인하고 계신 겁니까?”
김 부장 “물류센터는 트럭이 얼마나 편하게 드나드느냐가 사업성의 절반이야. 진입이 불편하면 임차인이 계약을 꺼려. 서류에는 도로가 있다고만 적혀 있지, 그 도로가 쓸모 있는지는 안 적혀 있잖아.”
김 부장 “서류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현장은 빠진 사실을 보여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대리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창고 외벽, 도로 폭, 배수로, 인근 공장의 표지판까지 하나하나 폴더에 담겼다. 서준은 투자검토 목록에 새 항목을 추가했다. 토지 소유권 이전 완료 여부. 진입도로 확장비. 철거 책임. 주변 민원. 인허가 조건. 목록은 아침보다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서준 “부장님, 사업계획서에 있는 ‘토지 확보 완료’라는 표현과 실제 상황이 꽤 다르네요.”
김 부장 “그래서 표현을 그대로 믿으면 안 돼. 계약서와 등기, 현장 증빙을 같이 봐야 해.”
그날 저녁 서준은 사진 파일의 이름을 바꾸었다. ‘현장사진’이 아니라 ‘사업계획서와 다른 점’이었다. 파일명을 고쳐 적으면서, 그는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이 본 것이 지도 위의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흙과 낡은 함석과 좁은 도로로 이루어진 실제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사진을 하나씩 천천히 넘겨보던 그는, 사업계획서의 매끄러운 문장들이 앞으로는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읽히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서류의 한 줄 뒤에는 언제나 그가 두 눈으로 직접 걸어봐야 할 땅이 있었다.
---
— 이 시리즈는 AI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 (0)